[이상살로] 第二象限바빌론의蕩女
드림군밤2023-05-11 09:12

요카난은 선지자였다. 그는 예언가처럼, 도시 마천루에서 아래를 굽어보듯 미래를 직시했다. 도시의 삶에 순응한 채로 무심하게 혹은 진부하게 거리 풍경을 걷는 범인들과는 남다르게 대의를 추구했다. 또한 그 단정한 머리통 안에 든 두뇌는 매우 박식해, 지성과 더불어 끊이지 않는 사유를 예찬하였다. 구가함을 넘어 성취해내었다.

일찍이 도시의 기득권 엘리트라는 가증스럽도록 풍족한 삶에서 자라나고 형성된 그의 인격은 그러나 어미의 복중에서부터 유달랐다. 특출나게 깨어있던 요카난의 정신은 그가 가진 고결한 이상과 다르게 굴러가는 세계, 때로는 이치 그 자체에 비탄했다.

요카난은 몽몽한 방종과 미성숙의 둥지를 벗어나 외곽에 파다하게 굴러다니는 삶들, 천박한 굴레들 한가운데로 몸을 던졌다. 도망하듯 달음박질한 것이 아니라 흡사 강림하듯 허리를 굽힌 것이다. 반드레한 선전만이 아니고 이사야와 엘리야가 그러하듯이 지팡이를, 두 다리를 흠핍한 광야 땅에 세워 구제를 행한다. 그가 자비와 긍휼과 기개로 치뜬 눈에 담긴 인류는 역약하고 무능했다. 또한 무지로 맹목하니, 명암 없이 사위 거뭇한 무저갱 속에서 허우적대는 가련한 짐승들이기도 했다.

나는 회개를 울부짖는다. 내가 너희를 물로 세례하겠다.

그는 이전까지의 평생을 바쳐서 해온 사유와 인격 주체에 관한 연구를, 그 집합체이자 정수가 되는 어느 약물을 둥지 외곽에 전파했다. 생각을 포기하고 대뇌피질을 아둔의 늪에 담가 썩혀가던 이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그들은 고매를 실천할 가능성을 얻었다.

사악은 언제나 선을 죄와 폭거로 훼손시키려 들었고, 비로소 둥지가 움직였다. U사 간부 헤로디아의 간계로 요카난은 들창 하나 없는 독방에 유폐된다. 그곳에서 살로메는 요카난을 만났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도려내어져 억지로 접붙여 식수 되고도 썩거나 말라비틀어지는 일 없이 촉대처럼 우뚝 선, 주변을 밝히는 황홀한 존재를.

요카난은 그가 구제해야 할 모든 것—빈곤한 외곽의 무리 외에도 둥지의 개개인에게까지 관대했으나, U사와 살로메에게만은 예외였다. 요카난은 얇고 단정한 입술로 살로메를 저주했다. 그 말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포도주처럼 끈적하게 살로메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살로메는 자신을 예리하게 침범해오는 혐오, 그 매섭고 차가우면서도 강렬한 감정에 불현듯 아득해진다. 사랑과 착각해버릴 것만 같았다. 요카난의 잘린 목을 들고 입을 맞췄을 때 살로메는 순결을 잃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저 사람의 눈이야. 튀루스의 태피스트리를 횃불로 태워 뚫은 검은 구멍 같아. 용이 사는 검은 동굴, 용이 자기 거처로 삼은 검은 동굴 같아. 환상적인 달빛에 일렁이는 검은 호수 같아…….』*




당신은 요카난 같아요.

당신은 요카난 같아요.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핏기 없는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던 여자는 대뜸 그렇게 속삭였다. 달짝지근하니 요염한 음성이 목더께에서 흩어진다. 숨결은 기분 나쁜 점착성으로 낙인된다. 요카난이 누구인가?

그자가 누구요?

이상은 묻는 대신 반추한다. 날개의 수석 연구원으로 추상적 미지의 정합성과 이치를 규명하고 개념을 정착시킨 이상이라고 해도 내면의 파편 난 거울을 들여다봤자ㅡ분산하는 갈래로 머릿속 지식을 모색해봤자 생인을 알 겨를은 없었다. 다만 주석도 없이 던져진 이름이 설된가 익은가 음절을 낱낱이 쪼개어 재어보던 그는, 잠깐의 시간을 소요하고서야 의아함을 표하듯이 수척한 그늘 드리운 눈을 끔벅인다. 늦은 대답이었으되 살로메는 그 깜박임이, 눈꺼풀이 여닫히는 짧은 점착의 순간이 바라 마지않던 가장 완벽한 답, 어떤 황홀한 명멸이라도 되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이상은 자신이 순간 여자가 전유한 장식물 따위로 전락이라도 한 기분이 들어 입안이 깔깔해졌다. 그는 박제로 고독하였지 누군가의 소유만큼은 아니었다.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다물린 입술을 아교로 칠해 침묵했다.

께름칙한 여자였다.





*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 中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민음사, 정영목 역)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