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즈키 무네치카는 태만에 익은 남자였다. 실생활에 필요한 허드렛일부터의 시중과 수발, 치장과 갖은 보살핌을 타인의 손에서 찾는 데에 도리를 세운 남자였다. 손길들은 그의 생과 검신에 어떤 규범처럼 스몄고, 이를 당연히도 여기는 순진한 어리광 따위가 눈썹달 모양의 우치노케 음각에 고루 배었다. 장비를 정비해주는 사니와의 손길에 웃으며 흘린 말이 묘한 눈길을 사는 것은 그에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치장하는 건 잘 못 해서 말이지, 항상 남의 손을 빌리네.
그리 말해도 그의 손끝이 방만에 단련되어 있음은 당연한 이치였다. 본디 헤이안 시대, 천황의 명을 받은 산죠 무네치카의 손끝에서 벼려진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쇼군의 검이었으므로. 검호의 칭호를 업고 쇼군의 직위에 올라선 남자가 만들라 명한, 그리고 후에 그가 휘두른 검은 귀히 받들어지는 것이 지당했다. 부드럽게 굴곡진 도신은 조금이라도 먼지가 쌓이는 일이 없이 도공, 혹은 군주 그 자신의 손에 정성스레 닦이곤 했다.
그리고 그날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얹힌 먼지 한 톨 없이 빛을 반사해내던 검 앞에는 요시테루가 앉아 있었다. 미카즈키가 놓인 받침대 위에는 다른 명검들도 나란히 장식되어 있었다. 요시테루는 제 검들을 등진 채 그 앞 다다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곤 했다. 그의 어소에 들어선 모든 이는 검들 가운데를 차지한 검성의 위용에 고개를 조아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나 검을 벼르고 이를 갈아온 그 날의 미요시만큼은 달랐다.
고개를 숙이고 발소리를 죽이며 충성을 맹세할 곳에서 그들은 변을 일으켰다. 많은 병사들이 별안간 장지문을 찢고 다다미를 울리며 돌진해왔다. 그들의 목적은 미카즈키의 주군이었으나 미카즈키 역시 그들의 전리품으로 노려졌다.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겨누어진 칼에 무릎을 꿇거나 눈을 질끈 감는 대신 등 뒤의 검들을 다다미 위로 부어 꽂았다. 하나씩 빼 들어 달려드는 적을 도륙했다. 칼날이 무뎌지면 다른 칼로 바꾸어 다시 죽여나갔다.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그 검호의 손에 마지막에 쥐인 검이었다. 요시테루의 최후까지 함께한 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죽어가는 살상의 기해에 동참한, 혹은 그를 방관한 존재. 모든 검이 이가 빠지거나 무뎌져 버려졌을 때, 아직 미카즈키의 도신이 첨예함을 잃지는 않았을 때에. 적들은 일제히 문짝을 뜯어내 던졌다. 육중한 나무에 맞아 요시테루가 넘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그 위에 달려들어 다다미로 덮어 누르고 저들의 창으로 그 덩이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간혹 사자의 몸뚱이를 꿰고 나오는 날 끝에는 혈흔은 물론이고 살점 따위가 딸려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는 차가움만 남았다. 저가 나동그라지고 요시테루가 엎어진 작은 다다미, 그 좁은 공간을 둘러싼 불길은 홧홧했으나 절대영도의 냉기에는 허무가 가득했다. 슴베를 끼워 넣었던 손잡이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교히 감은 최상급 어피는 이미 타드락거리며 열기에 먹히고 있었다. 아아, 주군 요시테루여. 그대도, 나도 사그라들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토록 강인하던 그대를 농락하여 죽음에 내던지는 것은? 드높은 권위와 막강한 힘을 가진 남자조차 꺾이게 만드는 것은 생이었다. 생과 그것을 둘러싸는 껍데기, 형체, 육신. 미카즈키는 수없이 창에 찔려 스러진 다다미 밑의 몸뚱이를 가늠한다. 육신에 묶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중과부적으로 비참하게 살해당한 어둠 속의 얼굴을 그려본다. 그대는 소리 지르고 있던가.
콧등 위로 도첨이 스쳤다. 주마등이라 일러야 할지 모를 것이 지나간 자리에 날카로운 감각이 찾아 들었다. 검비위사가 휘두른 태도였다. 삽시간에 피어오르는 통증에 비틀대며 몸을 물렸다. 하하, 아하하하……. 실실 헛웃음이 샌다. 흉하게 찢기고 피에 젖은 의복도, 어슴푸레 흐려지는 의식도. 인제 보니 정말로 주마등이었던 모양이다. 검에 낭자한 핏줄기를 털어내며 눈을 홉떴다. 전투 중의 여념에 혹여 부서질까, 우려하며 이를 사리문 사니와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 이런, 웃고 있을 때가 아닌가. 미카즈키는 읊조리며 손잡이를 고쳐 쥔다. 엄지와 검지를 슴베에 바짝 붙인 채 느리게 날을 들었다. 코를 베어 가려 한 태도 하나, 반쯤 지친 대태도 하나. 몸뚱이만 버텨준다면 얼마든지 도륙하여 숨진 사지를 포상 삼아 사니와에게 바칠 수도 있을 게다. 미카즈키는 현신한 장광도를 빼 들어 휘둘렀다. 미카즈키, 초사흘 달이 허공을 가르며 울부짖었다. 검비위사 둘 중 한 놈이 뒤로 나자빠지는 것이 얼핏 보였다. 빠르게 시선을 돌리자 사니와가,
아, 그녀의 표정을 보기 전에, 무언가 목에 닿았다. 살과 혈관과 뼈를 깊이 파고드는 감촉이 목 언저리에서 느릿하게 재생되고 있다. 사니와는 경악에 물들어 크게 치뜬 눈으로 기울어지는 중이었다. 그녀가 내뻗은 손은 착실히 돌아가지만, 수하가 목을 그이자 내지른 가녀린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자연스럽게 먹먹한 정적 속에서 미카즈키 무네치카의 세계가 회까닥 뒤집어졌다. 느려터진 인지는 그가 바닥과 맞닿을 때쯤, 눈앞에 튄 핏방울에 이르러서야 목하를 따라잡는다. 둔해지는 몸뚱이에 얽매여 일찍이 제 주군이 걸어간 길을 이제 와 따라잡는다. 결국, 육신의 부스럼에 눈이 가려져 도태되는 것은 필멸의 길인가. 미카즈키는 씁쓸한 자문에 소리 없이 웃었다.
뭐, 형체가 있는 건 언젠가 부서지지. 그날이 오늘이었을 뿐이다.